공대,건축과, 조선업.IT. 대학이후로 남자 비중이 높은 세계에서 공부하고 직장을 다녔다.
학창시절은 그럭저럭 무난했지만, 직장생활은 터프했다. 남자들이 우글 거리는 직장에서, 학연 지연 기댈곳 없어 늘 찬밥신세였다.
남부럽지 않은 서울의 대학 출신 이지만, 전공과 상관없는 분야를 선택했기에 그냥 똥멍청이 취급을 받았다.
그럴듯한 업적을 남겼어도, 남자들은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여자니까 누가 뒤에서 봐줬겠지. 혼자서 니가 잘될리가.
이미 형성된 그 기업문화는 내가 바꿀수 없다. 번 씌어진 그 색안경들은, 내가 벗길수 없었다.
사회는 냉정하고 오해 투성이다. 그리고 피곤한 곳이다.
아무리 이악물고 열심히 해도, 넌 그냥 여직원 이라는 뒷담화가 항상 내 뒤에서 들리는 느낌이었다.
직장생활이 힘든 이유는 대게 업무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힘들게 한다. 상사, 동료, 업체든..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수 밖에.. 나의 능력보다 학연 지연이 중요했던 그곳에서 나는 뛰쳐 나왔다.
하고싶으면 해보고 마는 성격. 철없어서 많이도 까불었다. 사업하면 다 성공하는 줄 알았다.
돈있으면 사업은 누구나 다하는 줄 알고, 부모님께 돈을 빌려 사업을 몇번 시도했다.
잘될리 만무하다. 큰돈 손해보지 않고 부모님께 빌린돈 다시 되갚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지 싶다.
IT 분야..남자들 세계에서 살아남아 보겠다고 덤빈 것은 아니다.
미국의 디지털 노마드처럼 살아보려고 한두가지씩 시도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IT업이 어떤 세계인지 정말 천지도 모르고 뛰어들었다.
그전과 차이가 있다면 취업이 아니라 창업이다.
학연 지연으로 나를 무시할 상사도 동료도 없다. 쓰레기 같은 조직 문화에 나 자신을 맞출 필요가 전혀 없다.
철저하게 실력으로만 인정받으면 승산이 있는 게임이었다.
경쟁사도 없다. 독립적으로 직접 영업하고 수주한 프로젝트만 잘하면 그만이다.
대표부터가 여자기 때문에 여자라서 무시하는 일은 절대 없다. 모두가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입사부터 공평하다.
나이도 필요 없다. 모두가 서로 이름을 부르고 존댓말을 한다.
말도 안되는 꼰대들 분위기로. 창창한 잠재 인력들이 박탈감에 쫒겨나는 일은 절대 없게 만들 것이다.
어느날 고객과 우리 여직원이 통화를 하는데, 고객이 비웃는다.
말을 못알아 듣는다며 전화상담 고객센터 직원 대하듯이 빈정을 상하게 한다.
이메일로 항상 가이드라인 드리고 녹화 영상으로 제공해드려도, 바쁘다는 핑계로 절대 보지 않던 고객이다.
전화상으로 초등학생 가르치듯이 이메일 내용을 하나하나 다 설명해줘야 한다.
대표도 여자. 직원도 여자라 우리가 우습게 보이나 싶어 내가 직접 고객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이 프로젝트 담당자는 코딩까지 할줄아는 아주 유능한 직원입니다. 저보다 더 잘알아요. “
함부로 대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의 뜻으로 돌려 얘기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이 일을 하며 불쾌한 차별을 느꼈다.
아.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우리 회사가 여자직원이 많기 때문에 만만한 걸까..
그리고서는 크몽을 살펴보니 수백명에 가까운 IT 전문가 중에 여자는 거의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이쪽 업계의 유일한 여자 대표는 아니겠지만. 보기 드문건 사실인듯 하다.
어느날 고객 분중 여자 고객분과 통화를 하는데, 고객분이 깜짝 고백을 한다.
고객 : 대표님, 사실 저도 개발하고 있어요.흑흑. 너무 반가워요!!
나 : 저 IT하시는 여성분 처음 뵈요!! 아니 대표님!!! 정말??? 진짜?? 하..얼마나 힘드실까요… 하..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요..
우리는 한동안 아무말 없이 서로 감탄사만 연신 내뱉었다. 어릴 때 잃어버린 고향 친구 만난 것처럼 반갑기만 했다.
말이 필요 없었다. 갑자기 눈물도 울컥 쏟아져 나와 목이 메였다.
그동안 별 문제 없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신경쓰지 않는줄 알았다.
처음으로 이 업계에서 여자 개발자 대표를 만난 그 날, 사막의 오아시스 만난 것만 같았다.
하루도 무난하게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사업이라는 것이 다 그렇겠지만, 유독 IT 업은 정말 한치 앞을 알수 없다.
언제 어떤 에러와 마주칠지 가늠할 수가 없어 늘 긴장 상태다.
이제와 문득 깨달은 것은, 미친듯이 달려왔던게 참 다행이다 싶다.
여자, 지방, 신규업체 등 그 어떤 꼬리표도 이제는 수많은 포트폴리오로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의심과 선입견의 질문들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증명해보이는 방법 뿐이다.
자식 같은 나의 프로젝트들이, 든든한 나의 빽이 되고 있다.
정말 미친듯이 달려왔던 하루하루가 선물한 작은 안도감이다.